종이 이전의 종이 ! ?


'종이 이전의 종이'라면 모순된 말 같지만, '죽간'이 주요 기록매체로 사용되던 기원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초기의 종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1957년 산시성의 고분에서 발굴된 파교지(灞橋紙, B.C. 156~87)는 화학분석과 촉각테스트 결과 종이와 같은 식물섬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도 방마탄지(放馬灘紙, B.C. 180~142)와 금관지(金關紙, B.C. 6c)등이 모두 채륜의 종이제작(AD 105년경) 보다 시기가 앞선다.

문헌에서도, 이 '종이 이전의 종이'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A.D. 100)는 '紙(종이 지)’를 헌솜을 표백해 고르게 펴낸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풀솜이나 마(麻)를 강물에 불리고 두드려 표백하는 표모(漂母)들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 표모들은 진득한 섬유소들을 두드려 엉켜지게 한 다음 건조하여 얇은 조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방마탄지와 같은 '종이 이전의 종이'들이 그러한 방법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런 종이들은 이미 전한(前漢)대 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종이로 인정치 않는 학자들이 지적하듯, '종이 이전의 종이'들은 종이 제작에서의 자르기, 찧기, 뜨기를 거치지 않은 거칠고 조악한 조각들이기에, 고르고 넓은 면을 가진 채륜 이후의 종이와 다르다. 파교지의 경우 귀중품 포장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방마탄지도 본격적 기록매체라기 보다는 지도를 그디는 등 보조적이고 제한적인 용도로 이용된 듯하다. 여전히 정보를 기록/전달하는 중심적인 매체는 죽간이었다.

하지만 '종이 이전의 종이'를 종이라 할 수 없다고 해도, 고대로부터 섬유성분의 물질을 유연하게 풀어 천을 만들어 왔고, 그것이 바로 채륜이 종이를 만들었던 원천이었다는 사실은 역시 변치 않는다. 이전까지는 종이(紙)의 어원이나 표모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 막연히 추정해왔는데, '종이 이전의 종이'의 발굴로, 그 추정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즉 채륜 혼자 세상에 없던 종이를 완전히 새롭게 발명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채륜의 종이가 갖는 가치가 그 만큼 떨어지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오히려 많은 발명들이, 익숙하던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관련없어 보이던 것들을 연관짓고 종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채륜의 작업 역시 그러하다. 종이는 그렇게 채륜에 의해 보다 완성도 높은 기록매체로 만들어졌고, 그제서야 죽간을 대체하는 본격적인 기록매체로 부각될 수 있었다.

참고자료
  • MBC 다큐 『페이퍼로드』(6부작) 1부 위대한 유산, 종이의 탄생, 2010.
  • 진순신(조형균 역),『페이퍼로드:종이를 통해 바라 본 동서문명교류사』, 예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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